행복한 교회

검색 전체메뉴

대메뉴

전체메뉴

새벽묵상

#사순절 새벽묵상 (20260317-화) 눅 15:22-24 돌아온 탕자! ④

김광철 목사
2026/03/17
30
187.♡.♡.28
출처 : Youtube
#사순절 새벽묵상 (20260317-화) 눅 15:22-24 돌아온 탕자! ④
  ■ (눅 15:22-24)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 돌아온 탕자 이야기  오늘 같이 나눌 ‘고난을 통해 열매 맺은 사람’은 ‘돌아온 탕자’로 알려진 작은아들에 대한 네 번째 나눔입니다. 
  ■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이제 아버지 집에 돌아온 작은아들은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환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아들은 아버지에게 눅 15:21절에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은아들은 아버지에게 드릴 다른 말씀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다’라고 먼저 그의 죄를 고백합니다. 
  작은아들이 사실 아버지에게 죄를 지은 것은 너무나도 명확한 일입니다. 앞서도 나누었듯이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에 자기가 받을 상속 재물을 달라고 했으니, 이것은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뉘앙스의 요구이기 때문에 이것이 얼마나 큰 죄(罪)인가 하는 것은 당시에 너무나도 명확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그의 죄를 사죄(謝罪)하고 관계 회복을 시도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가장 우선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아버지가 받아주지 않으면 작은아들은 더 이상 그곳에서 설 자리가 없고, 아버지에게 패륜을 저지른 일을 다 알고 있는 이웃들과 지역에서도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는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은아들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고 고백합니다. 작은아들이 지금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다는 사실은 당시 사회 통념상 너무나도 당연한 고백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지금 작은아들이 하나님께도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지금 이야기의 문맥상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고백은 지금 아버지 앞에 자기의 삶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아버지에게 무언의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배반하고 나가서 바르고 정직하게 살았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도 허랑방탕하게 살았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아들이 밖에 나가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눅 15:13절에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라는 저자 누가의 설명과, 눅 15:30절에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라고 불평하고 원망한 큰아들의 설명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작은아들은 이런 삶이 하나님 앞에 죄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에게도 죄를 지었고, 하나님 앞에도 죄를 지었음을 깨닫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작은아들의 시선이 물질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고통 가운데, 사람들의 외면에, 실패와 절망의 순간이 찾아오니 아버지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작은아들은 아버지에게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작은아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결단했던 것이 눅 15:18-19절에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라고 결단했었습니다.
  작은아들은 미리 그렇게 결단했던 대로 아버지를 만나자, 아버지 앞에 사죄를 드렸고, 다음으로 ‘이제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고 나를 품꾼의 하나로 써 주세요!’라고 고백했습니다.
  작은아들의 입장에서는 용서를 통해 작은아들의 위치를 회복하는 것은 꿈도 못 꾸고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아버지에게 한 일이 어떤 일이었는지를 자신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은아들의 지위를 회복하는 것은 기대하지도 못하고, 이제는 자기를 품꾼들 중의 하나로 아버지께서 받아주시기라도 한다면 그것마저도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작은아들은 이런 각오를 하고 자기를 맞으러 달려 나온 아버지 앞에 선 것입니다.
  ■ 작은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반응  그런데 아버지의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아들의 이야기에 답하기보다는 종들을 먼저 불러 이야기합니다. 
  막 15:22-24절에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①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②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③ 발에 신을 신기라 (23) ④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⑤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바로 종들에게 명령합니다. ‘①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②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③ 발에 신을 신기라 ④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작은아들을 만나 제일 처음 한 일이 이렇게 아버지의 집에서 작은아들의 지위(地位)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아버지가 한 일을 통해 지금 아버지 앞에 있는 작은아들의 상황이 어땠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옷은 누가 봐도 초췌하고 더럽고 낡았을 것입니다. 신발도 다 떨어지고 더러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뭄과 기근이 있던 지역에서 왔으니 먹을 것을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해 있었던 작은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임에도 아버지는 작은아들의 손에 ‘가락지’를 끼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아버지 앞에 있는 작은아들의 모습이 초췌하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는 여전히 아버지의 사랑하는 작은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종들에게 속히 작은아들의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우라고 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해서 작은아들에게는 물론이고 온 집안의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이 작은아들은 자기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한 것입니다.
  당시 유대나 고대 근동에서 ‘가락지의 의미’는 단순한 반지 정도의 의미를 넘어섭니다. 반지에는 대부분 가족의 문장이나 이름 또는 기호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반지로 문서, 편지, 계약서에 찍으면 그 즉시 아버지의 공식 서명과 같은 효력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가락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버지의 권한, 대리권, 결정권을 위임받는다는 상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창 41:42-44절에도 “(42)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43)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44)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는 그의 인장 반지를 요셉에게 주어 그를 대신하여 결정할 수 있도록 했고,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애굽 땅에서 요셉의 허락 없이 수족을 놀릴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다른 이들, 즉 온 마을 사람들에게도 작은아들의 지위를 회복했다는 것을 선포하고 작은아들을 보호한 것입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를 배반하고 나간 배반자, 아버지가 죽기 전에 상속 재물을 요구한 패륜아가 아니라 그는 여전히 아버지의 작은아들이라는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아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압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지금 작은아들이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아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았고, 그 준비된 일들을 거침없이 진행합니다.
  작은아들은 집을 나가고 없었지만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작은아들에게 무엇을 해 줘야 할지를 미리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 우리가 먹고 즐기자  그리고 이어 아버지는 모두에게 준비된 음식을 먹고 즐기자고 모든 이들을 초대합니다. 아버지는 눅 15:21절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라고 잔치에 초대하는 이유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작은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얻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작은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미리 상속받아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나간 것은 아버지에게 작은아들을 잃은 것 같은 아픔이었고, 고통이었다는 말입니다. 작은아들은 오직 자기가 받을 재산에 관심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작은아들의 존재에, 함께 함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작은아들을 떠나보내고 고통의 시간과 아픔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대하던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기쁨은 말로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작은아들에게 아들의 지위를 다시 회복시키고, 그 소식을 이웃과 온 동네에 선포하고, 함께 즐기기를 선포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모든 이들을 식사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작은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났고, 잃었다가 얻었기에 이렇게 식사를 준비했다고 선언합니다. 
  아버지는 이제야 마음 놓고 먹고 먹을 수 있었고, 이제야 마음 놓고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기쁨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작은아들이었습니다. 작은아들이 아버지의 기쁨이고 즐거움이었습니다. 비로소 아버지는 작은아들로 인해 웃을 수 있었고, 비로소 마음껏 음식을 먹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기 원했습니다.
  작은아들로 인해 중단되었던 웃음과 기쁨과 평안과 평화가 아버지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나로 인해 중단되었던 ‘천국의 잔치’가 시작됩니다!
  본문 앞에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던 두 비유의 공통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한 마리 잃은 양의 비유, 잃은 드라크마 비유에서 잃은 양을 찾고,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하나님의 기쁨이며 중단되었던 천국 잔치가 열리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오늘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아버지가 작은아들을 맞이하고 기쁨을 회복하고 중단되었던 행복과 잔치와 즐거움이 회복된 것처럼 잃었던 천국의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이 오늘 우리 삶을 통해 회복되는 놀라운 하루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묵상- 나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설 때, 나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앞에 설 때 어떤 마음으로 섭니까? - 나를 위해 이미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계신 하나님의 세세하신 은혜를 누린 경험이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기쁨인데, 나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지금 가장 기뻐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하나님으로 대체하겠습니까?
  ■ 함께 할 기도1. 세계를 품은 기도 – 허익현 선교사2. 과달라하라 1323 스테이션(검정고시학교, 기술학교와 신학교)을 건축할 계획입니다. 설계와 모든 땅 서류 준비에서부터 모든 과정들이 순조로이 잘 이루어지도록3. 로뎀교회를 구매할 계획을 가지고 3월에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도록 4. 귀한 사역에 동역할 신실한 동역자를 보내주시기를5. 우리가 섬기고 기도하는 선교지, 선교사님들, 단체와 교회 위해6. 우리 자녀들을 위해(언제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으로 살도록)7. 로뎀교회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장학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데, 믿음의 자녀들이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통로가 되도록8. 나를 먼저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 앞에 매순간 기쁨과 감사로 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행복한 교회(Happy Diaspora Fellowship)
비밀글 확인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비밀번호 :
QRCODE를 스캔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