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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

#사순절 새벽묵상 (20260318-수) 눅 15:25-32 돌아온 탕자! ⑤

김광철 목사
2026/03/18
23
187.♡.♡.28
출처 : Youtube
#사순절 새벽묵상 (20260318-수) 눅 15:25-32 돌아온 탕자! ⑤
  ■ (눅 15:31-32)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 돌아온 탕자 이야기  오늘 같이 나눌 ‘고난을 통해 열매 맺은 사람’은 ‘돌아온 탕자’로 알려진 작은아들 이야기에 대한 마지막 다섯 번째 나눔입니다. 
  ■ 큰아들의 반응  작은아들이 마침내 하나님과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다 고백하며, 아버지가 그렇게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작은아들을 보호하고, 그의 지위를 회복시키고, 온 동네가 함께 할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도 아버지가 느끼는 기쁨이 회복되고, 아버지와 함께 즐거워하는 놀라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에게는 작은아들 외에 큰아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눅 15:25-27절에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밖에서 일하다 돌아온 큰아들의 눈에 그간 볼 수 없었던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작은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아 나간 뒤로, 집에는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사람들이 가득하고, 시끌시끌하고 웃음소리가 끊이지를 않습니다.
  이에 아들은 왠일인가? 종에게 물었고, 종은 ‘당신의 동생이 건강하게 돌아와 아버지가 그를 맞이하고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라고 소식을 전합니다.
  ■ 큰아들의 분노  이 종의 말을 들은 큰아들은 화가 났습니다. 눅 15:28절에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큰아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분노(忿怒)이고 화(禍)일 수 있습니다. 큰아들도 동생이 그렇게 온 집을 시끄럽게 하고 나갔던 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작은아들을 정처 없이 기다리는 아버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작은아들이 돌아왔다고 이렇게 큰 잔치를 베푼 것은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큰아들은 이 잔치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 아버지의 위로  이런 큰아들을 아버지가 또 먼저 봤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달려 나옵니다. 그리고 그를 이해시키려고 합니다. 같이 들어가자고 권합니다.
  하지만 큰아들의 마음은 이미 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권하는 아버지에게 눅 15:29-30절에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라고 말하며 아버지와 동생을 원망(怨望)합니다.
  그렇습니다. 큰아들은 당연히 자기가 더 일도 많이 했고, 아버지 곁에서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기에게는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잡아준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재산을 미리 상속받아 나간 패륜아는 창녀들과 함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왔는데도 아버지는 기뻐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니 동생도 미웠습니다.
  이것이 지금 아버지 앞에서, 집 나갔다가 돌아온 동생 앞에서 느끼는 큰아들의 마음입니다.
  이에 아버지가 설명합니다. 눅 15:31-32절에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좁은지? 왜 이렇게 이기적인 생각만 하고 있는지? 왜 이렇게 시기 질투하는 마음으로 가득한지?
  끝까지 아버지는 큰아들을 이해시키려고 합니다. ‘항상 너는 나와 함께 있으니, 나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먼저 큰아들을 인정합니다. 작은아들은 떠났지만, 큰아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아버지와 함께하는 자리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 큰아들과 아버지의 관심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에 있는 큰아들에 대한 신뢰(信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큰아들의 수고를 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작은아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작은아들이 집을 나간 것은 아버지에게는 작은아들이 죽은 것이었고, 작은아들을 이 땅에서 잃은 것이었다고 아버지의 절망과 상실을 고백합니다. 그런 작은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돌아왔으니 그것 자체로 기쁜 일이 아닌가? 라고 큰아들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해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큰아들은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돌아온 작은아들에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준 아버지에게 화가 났습니다. 큰아들에게 있어서 작은아들은 어디를 가나 재산을 축내는 문제아로 취급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해를 끼친 유해한 동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받아 나간 그 상속은 자기의 재산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돌아왔으니 또 다른 재산 상속의 문제로 자기의 것을 빼앗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재산이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아들의 존재에 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은아들이 재산을 잃고 탕진하고 어쨌든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가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왔다는 것이 중요했고, 그것이 감사하고 그것이 기뻤습니다.
  아버지의 기쁨은 재산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기쁨은 ‘작은아들의 존재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큰아들이 귀하지 않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잃은 것에 대한 관심이 더 있었다는 말이지 큰아들은 귀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잃은 비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99마리 양이 귀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잃은 한 마리 양도 나머지 99마리의 양과 같이 귀하기 때문에 그 한 마리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리고 잃었던 한 마리 양을 찾았을 때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벗들을 초대했던 것입니다.
  아홉 드라크마는 귀하지 않고, 잃은 한 드라크마만 귀한 것이 아닙니다. 그 한 드라크마도 다른 아홉 개의 드라크마같이 귀하기 때문에 찾아 나섰고, 그것을 찾았을 때 이웃들과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기뻐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결론은 어떻게 끝이 납니까? 아버지의 설명으로 끝이 납니다. 아버지의 설명 앞에 큰아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말이 다 맞았기 때문입니다. 큰아들은 이 순간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진짜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이었는지, 아버지가 자신의 수고를 잊지 않고 있고, 자신도 작은아들을 기뻐하는 것만큼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오해를 무너뜨립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낙심을 무너뜨립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절망을 무너뜨립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아픈 마음을 위로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어떤 상황과 역경 앞에서도 요동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 이 이야기의 주인공?  그러니까 우리가 이 예수님의 비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선(視線)을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수(數)에 있을 때, 우리의 시선이 물질의 양(量)에 있을 때 그것은 세상의 시선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아들을 얻은 아버지와 같이 물질에 시선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의 존재 자체에 시선을 둘 때 진정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돌아온 작은아들, 돌아온 탕자가 아닙니다. 변함없이 아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입니다.
  아들이 어떤 상황 가운데 있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손해를 끼치고, 어떤 방탕한 일을 했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사랑이 아니라 변함없이 그 아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버지입니다.  내 삶의 주인공도 나를 참으시고, 나를 값없이 구원하신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이렇게 우리를 생명의 가치로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가 함께하는 놀라운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묵상- 나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습니까? 그 사랑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아니면 나의 공로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큰아들은 아버지와 같이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나를 향하신 아버지의 사랑을 어떻게 고백하시겠습니까?- 나를 여전히 기뻐하시고 기대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는 요즘 내 삶 가운데 무엇으로 드러나고 있습니까?
  ■ 함께 할 기도1. 세계를 품은 기도 – 윤천석 선교사2. 과달라하라 1323 스테이션(검정고시학교, 기술학교와 신학교)을 건축할 계획입니다. 설계와 모든 땅 서류 준비에서부터 모든 과정들이 순조로이 잘 이루어지도록3. 로뎀교회를 구매할 계획을 가지고 3월에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도록 4. 귀한 사역에 동역할 신실한 동역자를 보내주시기를5. 우리가 섬기고 기도하는 선교지, 선교사님들, 단체와 교회 위해6. 우리 자녀들을 위해(언제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으로 살도록)7. 로뎀교회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장학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데, 믿음의 자녀들이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통로가 되도록8.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하루가 되도록
행복한 교회(Happy Diaspora Fellow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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