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새벽묵상 (20260326-목) 스 7:27-28 학사 에스라! ③
■ (스 7:27-28) (27)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28)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 에스라의 결심 오늘 같이 나눌 ‘고난을 통해 열매 맺은 사람’은 학사(서기관)이자 제사장인 ‘에스라’ 세 번째 나눔입니다.
오늘은 어제 같이 나누었는데, 스 7:10절에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決心)하였었더라”라고 고백한 에스라의 고백을 나누었습니다.
여기에서 ‘결심하다’라는 뜻은 히브리어로 ‘כּוּן(쿤, kun)’인데, 이 말은 ‘확고하다’, ‘준비하다’, ‘확립하다’, ‘고정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제 말씀을 나누면서 에스라가 결심한 것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 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크기에 그 말씀을 이스라엘에게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비해 또 다른 번역이 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세 가지 동사를 모두 에스라가 결단했다는 것과 연결해 해석하는 해석입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번역은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실천하며 규례와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바른), “에스라는 온 마음을 다 바쳐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실천하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쳐 그것으로 생활 규범과 법의 바탕을 세우려고 결심하였다.”(현대어), “For Ezra had prepared his heart to seek the Law of the LORD, and to do it, and to teach statutes and ordinances in Israel.”(NKJV), “For Ezra had set his heart to study the law of the LORD, and to do it, and to teach the statutes and ordinances in Israel.”(NRSV), “For Ezra had firmly resolved to study the Law of the LORD and to practice it, and to teach His statutes and ordinances in Israel.”(NASB) 등이 이런 의미로 번역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도 위에 번역된 대부분의 영어 성경과 같이 세 개의 동사들, ‘study(לִדְרֹושׁ, lidrosh)’, ‘do(וְלַעֲשֹׂת, vela'asot)’, ‘teach(וּלְלַמֵּד, ulelamed)’가 순서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에스라는 말로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자신이 먼저 말씀을 연구하고 배운 것을 실천하여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본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교훈을 더해 백성들에게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의 유익을 가르치기로 결단했던 것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교육은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고, 삶으로 경험하며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델이 지금 바로 자기 앞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다면 학생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가장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기를 이런 에스라의 결단은 오늘 본문에 더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스 7:27-28절에 “(27)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①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28) ②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③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④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찬송하라’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첫 번째, 하나님께서 친히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선포합니다. 이방 왕이 이렇게 피지배민족의 성전을 그냥 세우는 것도 아니고 아름답게 할 뜻을 주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에스라가 왕과 보좌관들과 고관들에게 총애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선포합니다. 앞서도 나누었듯이 에스라는 페르시아 정부와 무관한 사람입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학사였고, 하나님을 제사하는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에스라에게 은혜를 주셔서 페르시아의 주요 인물들에게 총애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친히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붙잡으시고, 에스라의 삶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그들도 에스라를 신뢰하고 총애하는 마음을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굴러온 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거침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세상과 짝하여 사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 에스라는 ‘하나님의 손(the hand of the LORD my God)’이 자신의 위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선포했습니다.
에스라가 고백하는 하나님의 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에스라에게 복 주시는 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지키시는 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보호하시는 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라에게 능력을 주시는 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라에게 위로해 주시는 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라가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든지 함께 하시는 손입니다.
에스라는 이렇게 자신의 삶 가운데 친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선포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배우고, 살다보니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고, 에스라도 이 하나님을 이렇게 마음껏 선포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페르시아로부터 이스라엘로 복귀한 것이 아닥사스다 왕의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하며, 이 일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셨기에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선포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스라엘의 2차 포로 귀환의 이유는 아닥사스다입니다. 하지만 그를 실제로 움직인 보이지 않는 손은 하나님의 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방의 왕들도 붙잡고 사용하심을 에스라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삶 가운데에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큽니다. 내 삶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의 원인은 내가 아니라 내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역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겉으로 드러나는 일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역사의 이유도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 결단의 사람들 ‘야곱’ 창세기 35장에 보면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나옵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의 갈등을 피해 외삼촌 라반이 머물고 있던 하란으로 도망했습니다(창 28장). 하란으로 올라가던 중 야곱은 꿈에 천사가 하늘과 땅 사이의 사다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꿈을 꾸고 그곳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곳이 바로 ‘벧엘’입니다.
그리고 창 28:20-22절에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①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②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③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라고 서원했습니다.
그리고 하란에 올라와 자리를 잡은 야곱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고 약 20년 동안 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형 에서와의 가슴 졸이던 조우를 뒤로하고, 에서를 떠나 야곱은 다시 세겜에 정착하여(창 33장) 약 10년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화가 난 야곱의 아들 시므이와 레위가 복수로 세겜 성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도시를 약탈했습니다(창 34:24-29).
이에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를 책망합니다. 창 34:30-31절에 “(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31)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의 시기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다시 ‘벧엘로 올라가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위기에 처한 야곱에게 ‘너는 왜 나와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느냐?’라고 책망하지 않으시고, 세겜을 떠나 하나님과의 약속이 있는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창 35:1절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①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② 거기 거주하며 ③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안전한 곳으로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에 거주하며 제단을 쌓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안전한 곳으로 가라하신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제단을 쌓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벧엘에서 하란으로 올라갈 때 하나님께 드린 약속들을 온전히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제단을 쌓은 기록은 창 33:18-20절에 “(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스라엘의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불렀더라”라고 단 한번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의 집안에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기전 집안 사람들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창 35:2-5절에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단을 쌓는 일이 소홀해진 야곱의 가족들에게 이방 신상들이 들어왔었습니다. 이 사실을 야곱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 대해 야곱은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았고, 정결케 하지도 않았습니다. 일상을 살면서 야곱의 결단과 신앙이 시들해진 것입니다.
문제는 언제 일어납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질 때 일어납니다. 물론 야곱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고군분투를 잘 압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우선순위를 놓쳤습니다.
이런 사실을 하나님께서 잘 알고 계셨기에 야곱에게 결단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제 야곱에게는 하나님의 요구 앞에 다시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안주하고 편안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세겜을 떠나 하나님께서 가라하시는 벧엘로 내려가야 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에 야곱은 결단합니다. 평안한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우상과 함께 하던 자리를 포기하고, 벧엘을 향해 모든 것을 정리하고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야곱의 가는 길은 달랐습니다. 창 35:5절에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나갈 때,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나갈 때 진짜 평안함이 있습니다.
에스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살고 가르치기를 결단하고 나갔을 때 하나님의 손이 에스라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야곱이 안주(安住)의 자리, 우상의 자리, 예배가 없는 자리를 떠났을 때 하나님은 야곱이 가는 그길에서 야곱을 친히 보호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결단하여 나갈 때 놀라우신 하나님의 손의 보호와 역사하심이 함께 하는 놀라운 하루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묵상- 나는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경험하고 아는 것으로 그칩니까? 아니면 그 하나님을 담대히 내 삶과 이웃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고 있습니까? 아니면 환경 앞에 우선순위가 바뀌는 편입니까?- 나는 삶의 결정을 할 때 내가 주체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입니까?
■ 함께 할 기도1. 세계를 품은 기도 – 사무엘 목사2. 과달라하라 1323 스테이션(검정고시학교, 기술학교와 신학교)을 건축할 계획입니다. 설계와 모든 땅 서류 준비에서부터 모든 과정들이 순조로이 잘 이루어지도록3. 로뎀교회를 구매할 계획을 가지고 3월에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도록 4. 귀한 사역에 동역할 신실한 동역자를 보내주시기를5. 우리가 섬기고 기도하는 선교지, 선교사님들, 단체와 교회 위해6. 우리 자녀들을 위해(언제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으로 살도록)7. 로뎀교회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장학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데, 믿음의 자녀들이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통로가 되도록8. 브링업 이재홍 내일 장학회를 통해 3월에도 선교사님 2가정의 자녀들을 선정해서 4월에 장학금을 지급하려고 합니다. 선교의 현장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은혜가 있기를9.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나가는 결단의 삶 가운데 친히 보호하시고 복 주시는 하나님의 손을 경험하는 복된 하루가 되도록
행복한 교회(Happy Diaspora Fellowship)